
월급은 제자리인데 점심값은 만 원을 넘고, 퇴근길 장바구니는 5만 원이 훌쩍 넘는 시대입니다. 서울 아파트는 40% 올랐고 S&P 500은 90% 상승했으며 비트코인은 1억 원을 돌파했지만, 내 통장 숫자는 여전합니다. 이런 '벼락거지' 현상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글은 투기가 아닌 설계, 대박이 아닌 생존을 목표로 1천만 원으로 경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금융 하우스를 짓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채권 시소 원리: 금리와 채권 가격의 역관계
투자의 세계에는 주식과 채권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이 있습니다. 주식은 성장과 혁신의 상징이지만, 채권은 따분하고 안전한 자산으로 오해받곤 합니다. 하지만 채권의 원리를 이해하는 순간, 전체 금융 시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됩니다.
채권의 핵심은 '시소 게임'입니다. 시소의 한쪽 끝에는 금리가, 다른 한쪽 끝에는 채권 가격이 앉아 있습니다. 금리가 올라가면 채권 가격은 내려가고,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 가격은 올라갑니다. 이 규칙은 절대적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10년물 국고채가 연 3.5%의 이자를 지급한다고 가정합시다. 1천만 원을 투자하면 매년 35만 원의 이자를 받습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4.0%로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정부는 새로 발행하는 채권에 4.0%의 이자를 지급하게 됩니다. 이제 시장에는 40만 원의 이자를 주는 새 국채가 등장했는데, 누가 35만 원짜리 낡은 채권을 1천만 원에 사려고 할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3.5%짜리 채권을 팔려면 가격을 980만 원 정도로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이자 수익 35만 원에 만기 시 받는 원금 1천만 원과의 차익 20만 원을 합쳐 새로운 4.0%짜리 채권과 비슷한 수익률을 맞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한국은행이 금리를 3.0%로 내리면, 시장에는 3.0%짜리 새 채권만 나오는데 내 손에는 3.5%의 이자를 주는 희귀한 채권이 들려 있게 됩니다. 그러면 이 채권의 가격은 1천만 원이 아니라 1,020만 원, 1,030만 원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바로 이 시소의 원리 때문에 전 세계의 모든 투자 은행과 자산운용사들이 중앙은행 총재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금리가 내려갈 것 같으면 만기가 긴 장기채를 사면 되지 않을까요? 이론적으로는 맞습니다. 시소의 길이가 길수록 작은 움직임에도 반대편은 크게 요동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초보자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20년물, 30년물 같은 장기채는 금리가 예상과 달리 단 1%만 올라도 두 자릿수 손실이 날 정도로 크게 흔들립니다. 실제로 2022년과 2023년 많은 투자자들이 금리 인하를 예측하고 미국의 20년 이상 장기채에 투자하는 ETF인 TLT에 뛰어들었지만,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계속 올리면서 TLT의 가격은 고점 대비 무려 40% 이상 추락했습니다. 안전 자산이라고 믿었던 채권에서 주식 이상의 고통을 맛본 것입니다.
단기채 ETF: 초보자를 위한 안전한 포트폴리오 기초
그렇다면 채권이라는 훌륭한 자산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파도가 없는 잔잔한 호수로 가면 됩니다. 시소의 길이를 30m가 아니라 짧은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만기가 10년 미만인 단기채의 세계입니다.
단기채는 금리가 움직여도 가격 변동이 거의 없습니다. 은행 예금보다는 가격 변동이 있지만 채권 중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축에 속하는 자산입니다. 그런데 이런 안전한 단위 국채들을 하나하나 사기는 번거롭습니다. 그래서 나온 현명한 대안이 바로 단위 국채 ETF입니다.
가장 쉽게는 주식 시장에 상장된 코덱스 단기 채권, 타이거 단기 통안채 같은 국내 상품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시야를 조금만 더 넓히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금고인 미국 단기 국채에 투자하는 ETF도 있습니다. SGOV나 국내에 상장된 미국 달러 단기 채권 ETF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상품들은 대한민국 정부 혹은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가장 안전한 단위 국채들을 수십 개 모아 놓은 하나의 바구니입니다. 주식처럼 스마트폰으로 쉽게 사고팔 수 있으면서도 은행 예금보다는 조금 더 높은 이자를 매일매일 복리로 쌓아 줍니다. 심지어 미국 단기채는 달러로 돈을 모아가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투자를 처음 시작하는 우리에게 채권의 첫 번째 목적은 대박이 아니라 안정성 확보입니다. 변동성이 큰 주식 시장에 내 모든 자산을 던져 넣기 전에 어떤 폭풍 속에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금융적 앵커를 내리는 과정입니다. 먼저 내 자산의 일부를 가장 안전한 곳에 묶어두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장기채의 유혹을 뿌리치고 단기채 ETF로 첫 채권 투자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구체적인 1천만 원 포트폴리오 설계도를 보겠습니다. 첫 번째, 가장 압도적인 비중인 50%, 즉 500만 원을 미국 단위 국채 ETF에 투입합니다. 지금처럼 환율이 요동칠 때 원화라는 땅은 질퍽거리는 진흙탕과 같습니다. 이럴 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암반인 달러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미국 단기채를 산다는 것은 내 자산의 절반을 달러로 바꿔 준다는 뜻입니다. 환율이 폭등해도 내 자산 가치는 달러와 함께 올라가니 방어가 되고, 게다가 미국 정부가 주는 쏠쏠한 이자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예산의 20%인 200만 원을 금 ETF에 투입합니다. 기초가 달러라면 기둥은 실물 자산이어야 합니다. 달러조차 흔들릴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 전쟁이나 인플레이션으로 종이 화폐가 휴지 조각이 되는 순간에도 금은 빛을 잃지 않습니다. 세 번째, 예산의 20%인 200만 원을 반도체, AI, 테크 같은 성장주 ETF에 투자합니다. 50%의 달러 채권과 20%의 금으로 튼튼한 방어막을 쳤으니 이 20%만큼은 조금 과감하게 미래 성장에 배팅해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10%인 100만 원은 현금 그대로 둡니다. 시장이 대폭락해서 세일 기간이 왔을 때 즉시 뛰쳐나가 싼값의 자산을 주워 담을 수 있는 기회의 총알이자,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집을 허물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비상금입니다.
실질금리와 금: 억만장자들이 이자 없는 자산을 사는 이유
최근 몇 년간 주식, 코인, 금, 심지어 부동산까지 모두 함께 오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이 모든 자산을 동시에 춤추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과잉 유동성입니다.
지난 몇 년간 특히 2020년 팬데믹 이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2020년 초 약 4조 달러였던 자산이 한때 9조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났습니다. 약 5조 달러가 넘는 돈, 우리 돈으로 약 6천조 원이 넘는 돈을 시장에 새로 찍어낸 것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돈의 쓰나미가 갈 곳을 잃고 모든 자산 시장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작동 방식은 이렇습니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었지만 물가는 여전히 높고 은행에 돈을 넣어도 내 돈의 실질 구매력은 오히려 줄어든다고 느낍니다. 이 돈은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위험을 감수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지수를 사상 최고치로 밀어 올립니다. 여기서 만족하지 못한 돈은 더 짜릿한 수익률을 찾아 암호화폐 시장으로 달려갑니다. 비트코인이 1억을 넘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열었고 수많은 밈코인과 알트코인들이 수십 배씩 폭등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와 해수면 자체가 높아지니 항구에 정박해 있던 모든 배가 떠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튼튼한 항공모함이든 구멍 난 조각배든 가리지 않고 모두 함께 떠오르는 에브리싱 랠리가 펼쳐진 것입니다. 이 거대한 유동성 파티의 본질은 결국 화폐 가치의 하락입니다. 돈이 너무 흔해지니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실물 자산의 가격은 오르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왜 전 세계 중앙은행들과 레이 달리오 같은 억만장자들은 이자를 한 푼도 주지 않는 금이라는 반짝이는 돌멩이를 계속 사모으는 걸까요? 그 비밀의 열쇠는 바로 실질 금리라는 개념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은행 예금 통장에서 보는 이자율, 예를 들어 연 3%라는 숫자는 사실 명목 금리일 뿐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내 돈의 실제 구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는 실질 금리입니다. 계산은 아주 간단합니다. 명목 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빼면 됩니다.
상상해 보겠습니다. 제가 100만 원을 은행에 넣어 1년 뒤 3% 이자를 받아 103만 원이 되었습니다. 통장 숫자가 늘었으니 돈을 번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1년 동안 짜장면값, 버스비 같은 물가가 4%나 올랐다면 어떨까요? 작년에 100만 원이면 샀던 물건이 이제는 104만 원을 줘야 살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