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댓글창에서 "삼성전자 29만 원인데 지금 사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볼 때마다 예전의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도 몇 년 전 삼성전자가 많이 빠졌을 때 '국민주니까 결국 오르겠지'라는 생각만으로 매수했다가 꽤 오래 물려있었던 경험이 있거든요. 지금 이 글은 두 회사 중 어느 쪽이 낫다는 결론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제가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주가 숫자보다 이익 구조와 시장 판도를 먼저 보는 시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HBM 시장 점유율, 2027년엔 어떻게 바뀌나
현재 HBM(High Bandwidth Memory) 시장을 보면 SK하이닉스가 약 57%, 삼성전자가 약 27%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HBM이란 기존 D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도록 여러 개의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고대역폭 메모리입니다. AI 서버와 GPU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부품이라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제품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글로벌 투자은행 UBS가 2025년 5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7년에는 이 둘이 각각 40%씩 비슷한 수준으로 수렴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나머지 20%는 마이크론이 가져가는 3강 구도입니다. UBS는 삼성전자의 HBM 출하량을 2027년 기준 기존 전망치인 203억 GB에서 230억 GB로 상향 조정했는데, 전년 대비 137% 증가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럼 SK하이닉스는 밀리는 건가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UBS가 SK하이닉스의 2027년 HBM 출하량 전망치를 소폭 낮춘 이유는 SK하이닉스가 고객사 요청에 따라 서버용 DDR과 LPDDR 쪽에 생산 능력을 더 배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주력 상품 하나가 아니라 여러 주문이 동시에 폭주해서 자원을 나눠 쓰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건 약해서 점유율이 빠지는 게 아니라, 전선 자체가 넓어진 겁니다.
왜 지금 메모리 시장은 과거와 다른가
제가 처음 반도체 주식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메모리는 사이클 산업"이라는 말이 거의 공식처럼 통했습니다. 호황이 오면 너도나도 공장을 지어 공급을 늘리고, 공급이 늘면 가격이 폭락하고, 기업 실적도 그 사이클을 그대로 따라가는 구조였죠. 그런데 지금은 그 공식이 예전만큼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구조가 달라진 핵심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 공급 자체의 물리적 한계: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고 가동하기까지는 4~5년이 걸립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루빈 시리즈는 기존 블랙웰 대비 D램 탑재량이 최대 3배로 늘어났지만, 공급은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이 공급 부족이 최소 2027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출처: Goldman Sachs).
- LTA(Long-Term Agreement) 확산: LTA란 고객사가 수년치 물량을 미리 확보하는 장기 공급 계약을 말합니다. 엔비디아는 2025년 2월 실적 발표에서 공급사와의 구매 약정 금액이 약 952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는데, 3개월 전보다 89% 급증한 수치입니다. 이런 장기 계약이 자리 잡으면 분기마다 가격이 출렁이던 과거 패턴이 완화됩니다.
- HBM 단가 자체의 상승: UBS는 2027년 HBM4 및 HBM3E의 ASP(평균판매가격)가 전년 대비 30% 상승할 것으로 전망을 상향 조정했습니다. 기존 가정은 가격 동결이었는데, 이를 뒤집은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하면 메모리 기업들의 이익 변동성이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 수 있습니다. 완전히 사이클이 사라진다고는 볼 수 없지만, 진폭이 확 좁아지는 구조로 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노무라증권도 LTA가 메모리 산업의 새로운 사업 모델로 자리 잡는다면 높은 수익성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출처: Nomura Securities).
두 회사의 이익 구조, 3년 뒤엔 어떻게 달라지나
SK하이닉스는 현재 1분기 영업이익률이 72%에 달합니다. 영업이익률이란 매출에서 각종 비용을 제하고 남은 영업이익의 비율로, 100원을 팔면 72원이 남는다는 뜻입니다. 반도체 업계에서 이 수준의 이익률은 전례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KB증권은 SK하이닉스의 2027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418조 원 수준으로 올리면서 목표 주가도 28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삼성전자도 1분기에 매출 133조 9천억 원, 영업이익 57조 원이 넘는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이 중 반도체 부문만 53조 원을 웃돌았습니다. 일부에서 파업 리스크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이 주가에 단기 노이즈는 될 수 있지만 중장기 방향을 바꾸는 요인은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로 JP모건은 파업으로 주가가 빠질 경우 오히려 매수 기회로 판단했습니다. D램과 낸드 계약 가격이 당초 전망치를 크게 웃돌며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PER(주가수익비율) 역전 현상입니다. PER이란 현재 주가가 주당 순이익의 몇 배 수준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투자자들이 미래 성장성에 얼마나 값을 치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금 삼성전자의 선행 PER이 SK하이닉스보다 오히려 높은 상태입니다. HBM 시장에서 이미 앞서 달리고 있는 하이닉스보다 삼성에 더 높은 기대값이 붙어 있다는 뜻입니다. 삼성전자가 HBM4 대량 납품에 성공하는 순간 그 PER 갭이 좁혀지면서 주가 재평가가 이뤄질 여지가 있다는 분석은 꽤 설득력 있게 들렸습니다.
지금 투자자로서 실제로 봐야 할 것들
"그래서 어느 쪽을 사야 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솔직히 이건 제가 답을 드리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만 제가 직접 투자하면서 느낀 건, 두 회사를 경쟁 구도로 놓고 하나를 고르는 시각보다 각각의 리스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먼저라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확인해야 할 핵심 변수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삼성전자의 HBM4 엔비디아 공급 안착 여부: 이미 세계 최초 HBM4 양산 출하를 선언하고 품질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실제 대량 납품이 안정화되는지가 2026년 하반기 주가의 가장 큰 변수입니다.
-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서 구매 약정 금액 변화: 952억 달러에서 얼마로 움직이는지가 메모리 수급 긴장도를 가늠하는 지표가 됩니다.
- 중국 CXMT의 기술 추격 속도: 현재 2~3세대 기술 격차가 있지만, 중국 정부가 대규모 반도체 국부펀드를 집행하고 있다는 점은 장기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변수입니다.
- 2027년 중반 이후 메모리 가격 고점 여부: AI 서버 투자 성장률이 2026년 이후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 HBM 단가 압박이 언제부터 시작될지를 지켜봐야 합니다.
"무조건 오른다"는 분위기에 실제로 공부 없이 따라 들어갔다가 오래 물려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리스크 체크는 매수 전 반드시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낙관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도, 개인 투자자에게 중요한 건 그 확률이 아니라 틀렸을 때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느냐이기도 하니까요.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같은 방향을 보고 달리는 두 회사입니다. AI 수요가 커질수록 파이 자체가 커지고, 두 회사 모두 그 성장의 수혜를 받는 구조입니다. 다만 각 회사가 그 과정에서 증명해야 할 과제와 안고 있는 리스크는 다릅니다. 삼성전자는 HBM과 파운드리에서 실력을 보여줘야 하고, SK하이닉스는 단일 포트폴리오 집중도에서 오는 변동성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지금 가격이 싸 보이는지보다 3년 뒤 이익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먼저 생각하는 습관이 훨씬 중요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하시기 바랍니다.